통쾌한박치기 링에서 내려오다

  • 등록 2006.10.28 12: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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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의 희망이었다

 
- 일본서 조문온 이노끼 일행
당신은`소시민의 영웅`…고이 잠드소서


천규덕은 당수, 장영철이 백드롭이라면 단연 김일은 박치기였다.
흑백 TV도 흔치 않았던 1960년대 김일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앉았다. 일단 풍차돌리기로 혼을 빼고, 박치기 한 방으로 마지막 일격. 순간 모여 앉은 사람들은 찐고구마를 입에 문 채 벌떡 일어났다. 승리의 함성은 온 동네를 울렸고, 힘껏 마주친 손바닥은 박치기한 김일의 머리만큼 얼얼했다. 팬티 바람의 아이들은 집에서 두꺼운 요를 깔아놓고 코브라 트위스트나 드롭킥을 연마했다.

김일. 그는 어른들에게는 힘이었고, 아이들에게는 꿈이었다.
"링 위에서만큼은 누가 뭐래도 내가 왕이다"라는 영화 `반칙왕`의 대사처럼 김일로 인해 고단한 세상은 링으로 변신했다. 그 위에선 우리 모두가 왕이었다. 신이 나서 입을 모아 `원, 투, 스리`를 외치면 피곤한 몸과 지친 정신은 말끔히 회복됐다. 전쟁의 잿더미 너머 희망도 보이는 듯했다.

김일을 이끈 것은 역도산이었다. 1929년 전남 거금도에서 태어나 씨름으로 호남을 평정한 김일은 56년 역도산의 제자가 되기 위해 무작정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밀입국 혐의로 체포된다. 역도산의 보증으로 풀려난 김일은 곧바로 그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역도산에게는 `4대 천왕`이라는 수제자들이 있었으니 자이언트 바바, 오오키 긴다로, 안토니오 이노키, 맘모스 스즈키가 바로 그들이다. 그 중 김일(오오키 긴다로)에 대한 역도산의 애정은 남달랐다. 박치기 기술을 익힌 것도 함경도 출신의 역도산이 평양 박치기의 위력을 알고 권했기 때문. 필살기를 위한 혹독한 단련은 필수. 머리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가마니에 비벼댔고, 10m 밖에서 거목이나 석벽에 달려들어 헤딩을 연습했다.

스승 역도산이 괴한의 흉기에 찔려 숨진 63년 김일은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80년 은퇴할 때까지 세계 타이틀을 20차례 방어하며 그가 치른 경기는 3000회가 넘는다.

그러나 그가 치른 무수한 경기만큼 그는 조금씩 스러져가고 있었다. 은퇴 후 거듭된 사업 실패와 격한 경기의 후유증은 그에게 14년간의 모진 병마를 안겼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링을 가득 채웠던 그는 어느새 온 몸을 다 실어도 헐빈해 보이는 휠체어 위에 있었다. 그리고 2006년 10월 마침내 영영 그 빛을 잃었다. 키 184㎝, 몸무게 140㎏의 거구였던 영웅의 몸은 떠날 땐 한없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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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희망의 왕’… ‘박치기 왕 김일’을 떠나보내며

나에게 김일이라는 이름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가 획득한 챔피언 타이틀이 아무리 많고 전적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해도 김일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아로새겨진 꿈과 희망의 상징이 한꺼번에 되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김일은 단순하게 김일이 아닌 것이다. 이름 앞에 반드시 ‘박치기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비로소 온전한 꿈의 대명사 ‘박치기왕 김일’이 되는 것이다.

내가 다섯 살 때부터 박치기왕 김일은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대중적 영웅이 없던 시대에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링에서 그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손에 땀을 쥐고 언제 박치기가 터질 것인가, 가슴을 졸이며 조바심을 치던 어린 시절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텔레비전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좁은 만화방이나 부잣집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지켜보며 나는 박치기왕 김일의 일거일동으로 온 나라가 환호하고 신음하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가 위기에 몰리거나 이마에 피를 흘리면 좁은 공간에 모인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탄식을 터뜨리거나, 한숨을 내쉬거나, 울분을 토하곤 했다.

하지만 박치기왕은 언제나 우리를 절망에서 구원해 주었고, 우리는 그의 구원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단 세 번의 박치기로 온 국민을 희망과 환희의 영역으로 이끌어 올렸던 진정한 왕!

그는 내가 살아온 시대의 진정한 왕이었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왕, 국민의 염원을 배신하지 않는 왕,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왕, 피 흘릴지라도 끝까지 싸워 이기는 왕…. 그는 내가 읽어온 동화 속의 어떤 왕보다 위대하고 값진 승리를 국민에게 안기는 왕이었다.

그 시절, 그가 진정한 왕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레슬링의 시대가 가고 왕의 시대가 갔다. 링을 떠난 왕은 경기 후유증과 지병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가끔 그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저렸다. 파렴치한 반칙왕들은 권좌를 떠나서도 떵떵거리며 사는데 어째서 우리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던 진정한 왕은 저렇게 쓸쓸하고 불행한 말년을 보내야 하는가.

박치기왕 김일을 떠나보내며 진정한 왕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진정한 왕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권력으로도 금력으로도 그것은 쉽사리 성취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치기왕 김일이 우리에게 주고자 했던 영원한 꿈과 희망의 메시지처럼 이런 때일수록 진정한 왕에 대한 기다림을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반드시, 언젠가, 그리고 어디에선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선사할 또 다른 왕이 오기를 우리는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참다운 왕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박상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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