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이야기, 아름다운 묘지명

  • 등록 2011.03.01 13:45:29
크게보기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묘지명(墓誌銘)에서 당대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읽는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3월1일부터 4월17일까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 묘지명"을 개최한다. 묘지명은 죽은 이의 이름·생년·집안 내력·주요 발자취 등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개인사뿐만 아니라 주변의 생활, 문화, 역사 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조선시대 묘지명 약 210여건이 소장돼 있다.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망라하며 종류, 형식, 내용 등도 다채롭다. 묘지명을 통해 파악된 인물도 200명이 넘는다. 영창대군, 사도세자, 한명회 등 유명인도 있지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하급 무관, 중인 등도 많다.

대부분 장방형 석제로 된 고려시대 묘지명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묘지명의 제작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분청사기, 백자 등 다양한 재질의 도자기로도 만들어졌으며 원형, 벼루형, 서책형, 그릇형 등 형태도 다양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적 소장품 100여건과 다른 기관 또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50여건을 한자리에 모았다. 조선시대 묘지명의 역사적 변천과 제작방법을 보여주는 1부, 묘지명에 나타난 사연과 수요계층 등을 주제로 한 2부로 나눠 전시한다.

1부는 시대순인 삼국∼고려, 조선 전기·후기로 전시했다. 조선시대에 묘지명을 짓고 제작해 무덤에 묻기까지의 전 과정과 무덤 모형을 재현했다. 2부에서는 왕과 왕실, 명문가, 일반 계층의 묘지명을 비교토록 했다. "묘지명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 코너는 역사적인 상황을 잘 보여 주는 영창대군 묘지명과 사연이 있는 묘지명 등을 모았다.

특히 어린 나이에 죽은 영창대군의 묘지명은 최초 공개된다. 당시 왕실의 정치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식을 죽음에 이르게 한 영조가 직접 쓴 사도세자 묘지명은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만록"과 달리 사도세자의 잘못을 기록해 주목할 만하다. [뉴시스]

■ 관련기사

조선 제14대 왕 선조(재위 1567~1608) 임금의 14왕자 중 막내이며 유일한 대군이었던 영창대군(1606~1614)은 이복형인 광해군이 즉위한 뒤 신분이 서인(庶人·보통 사람)으로 강등되고 만 8세의 나이에 강화부사 정항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 임금은 1623년(인조 1) 영창대군의 왕자 신분을 회복시키고 무덤도 왕자의 예로 개장(改葬)한 뒤 당시 우의정 신흠에게 묘지명(墓誌銘)을 짓게 했다.

하지만 경기 성남시 태평3동에 있던 영창대군의 무덤이 1971년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그의 묘지명은 미처 수습되지 못하고 매몰돼 있다가 1993년 도시가스 시설 공사 중 파손된 채로 발견됐다. 굴착기의 삽날에 찍혀 다섯 동강이 난 상태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영창대군 묘지명은 그가 생전에 겪었던 비운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비운의 영창대군 묘지명과 사도세자(1735~1762) 묘지 등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묘지명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조명하는 특별전이 열린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3월1일부터 4월17일까지 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올해 첫 특별전인 ‘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묘지명’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묘지(명) 약 210건 중 100여 건과 다른 기관 또는 개인이 소장한 50여건 등 모두 150여건이 출품된다.

무덤의 주인공(묘주·墓主)이 누구인지 알려주기 위해 무덤 내부 또는 그 언저리 땅 속에 남긴 기록인 묘지명은 죽은 이의 이름과 생몰년, 집안내력, 주요 발자취 등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한 인물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이뤄진 생활과 문화, 역사 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보통 무덤 주인공에 대한 기록인 묘지(墓誌)와 그를 추모하는 시구인 명(銘)으로 구성돼 있으며 묘기(墓記), 지문(誌文), 장지(葬誌), 광명(壙銘)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대부분 장방형 석재로 된 고려시대 묘지명과 달리 조선시대 묘지명은 전 시기에 걸쳐 광범위하게 제작됐으며 석재뿐만 아니라 분청사기와 청화백자, 백자 등 다양한 재질의 도자기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형태도 원형과 벼루형, 서책형, 그릇형 등 다채롭다.

무엇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200명이 넘는 조선시대 인물의 묘지명은 영창대군과 사도세자, 한명회, 서거정, 정철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하급 무관과 중인, 개성의 부호, 안변과 의주의 유생(학생)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도 포함돼 있어 조선시대 생활사와 문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특별전은 조선시대 묘지명의 역사적 변천과 제작방법을 보여주는 제1부와 묘지명에 나타난 사연 및 수요 계층 등을 주제로 해 꾸민 제2부로 구성돼 있다.

 
- 청화백자 모양의 사도세자 묘지명
제1부에서는 묘지명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삼국~고려, 조선전기, 조선후기의 시대순으로 나눠 조명하고 조선시대 묘지명 제작과정과 무덤 모형을 재현한다. 제2부에서는 왕과 왕실, 명문가, 일반계층의 묘지명을 비교 전시하는 한편, 이번 특별전에 처음 공개되는 영창대군 묘지명과 같이 역사적 상황을 잘 보여주거나 사연이 많은 묘지명을 모은 ‘묘지명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란 코너를 선보인다.

이번 특별전에 출품된 사도세자 묘지는 영조가 1762년(영조 38) 직접 지은 것으로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만록’과 달리 사도세자의 잘못을 기록해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19판이 전하는 서거정(1420~1488·경기도박물관 소장) 묘지명이나 충남 공주 계룡산 학봉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한명회(1415~1487) 묘지명 파편, 후대인 1706년(숙종 32) 만들어진 정철(1536~1593) 묘지명 등도 관심을 끄는 자료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의 조원교 학예연구관은 “재질이나 형태 등의 측면에서 고려 묘지의 양식을 계승한 조선시대 개성 사람들의 묘지에서 ‘고려 유민(遺民)’ 의식을 읽어낼 수 있는 등 이번 특별전에 출품된 유물 가운데 흥미로운 자료들이 많다”고 밝혔다. 02-2077-9453
 
- 한명회 묘지명
 
- 조존성 묘지명
 
- 신회양씨 묘지명
 
 
뉴스관리자 기자 infois@naver.com
Copyright @2004하늘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등록번호 : 서울다10295 등록연월일 : 2003년 11월 07일 제호 : 하늘문화신문 발행인 : 김동원 | 편집인 : 김동원 주소 : 서울시 강동구 천호대로1139 강동그린타워 11층 R1135 발행연월일 : 2004년 03월 05일 전화 : 02-6414-3651 팩스 : 0505-300-3651 copyright c 2004 하늘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