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묘지명(墓誌銘)에서 당대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읽는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3월1일부터 4월17일까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 묘지명"을 개최한다. 묘지명은 죽은 이의 이름·생년·집안 내력·주요 발자취 등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개인사뿐만 아니라 주변의 생활, 문화, 역사 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조선시대 묘지명 약 210여건이 소장돼 있다.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망라하며 종류, 형식, 내용 등도 다채롭다. 묘지명을 통해 파악된 인물도 200명이 넘는다. 영창대군, 사도세자, 한명회 등 유명인도 있지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하급 무관, 중인 등도 많다. 대부분 장방형 석제로 된 고려시대 묘지명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묘지명의 제작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분청사기, 백자 등 다양한 재질의 도자기로도 만들어졌으며 원형, 벼루형, 서책형, 그릇형 등 형태도 다양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적 소장품 100여건과 다른 기관 또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50여건을 한자리에 모았다. 조선시대 묘지명의 역사적 변천과 제작방법을 보여주는 1부, 묘지명에 나타난 사연과 수요계층 등을 주제로 한 2부로 나눠 전시한다. 1부는 시대순인 삼국∼고려, 조선 전기·후기로 전시했다. 조선시대에 묘지명을 짓고 제작해 무덤에 묻기까지의 전 과정과 무덤 모형을 재현했다. 2부에서는 왕과 왕실, 명문가, 일반 계층의 묘지명을 비교토록 했다. "묘지명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 코너는 역사적인 상황을 잘 보여 주는 영창대군 묘지명과 사연이 있는 묘지명 등을 모았다. 특히 어린 나이에 죽은 영창대군의 묘지명은 최초 공개된다. 당시 왕실의 정치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식을 죽음에 이르게 한 영조가 직접 쓴 사도세자 묘지명은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만록"과 달리 사도세자의 잘못을 기록해 주목할 만하다. [뉴시스] |
■ 관련기사 조선 제14대 왕 선조(재위 1567~1608) 임금의 14왕자 중 막내이며 유일한 대군이었던 영창대군(1606~1614)은 이복형인 광해군이 즉위한 뒤 신분이 서인(庶人·보통 사람)으로 강등되고 만 8세의 나이에 강화부사 정항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 임금은 1623년(인조 1) 영창대군의 왕자 신분을 회복시키고 무덤도 왕자의 예로 개장(改葬)한 뒤 당시 우의정 신흠에게 묘지명(墓誌銘)을 짓게 했다. 하지만 경기 성남시 태평3동에 있던 영창대군의 무덤이 1971년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그의 묘지명은 미처 수습되지 못하고 매몰돼 있다가 1993년 도시가스 시설 공사 중 파손된 채로 발견됐다. 굴착기의 삽날에 찍혀 다섯 동강이 난 상태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영창대군 묘지명은 그가 생전에 겪었던 비운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비운의 영창대군 묘지명과 사도세자(1735~1762) 묘지 등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묘지명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조명하는 특별전이 열린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3월1일부터 4월17일까지 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올해 첫 특별전인 ‘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묘지명’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묘지(명) 약 210건 중 100여 건과 다른 기관 또는 개인이 소장한 50여건 등 모두 150여건이 출품된다. 무덤의 주인공(묘주·墓主)이 누구인지 알려주기 위해 무덤 내부 또는 그 언저리 땅 속에 남긴 기록인 묘지명은 죽은 이의 이름과 생몰년, 집안내력, 주요 발자취 등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한 인물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이뤄진 생활과 문화, 역사 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보통 무덤 주인공에 대한 기록인 묘지(墓誌)와 그를 추모하는 시구인 명(銘)으로 구성돼 있으며 묘기(墓記), 지문(誌文), 장지(葬誌), 광명(壙銘)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대부분 장방형 석재로 된 고려시대 묘지명과 달리 조선시대 묘지명은 전 시기에 걸쳐 광범위하게 제작됐으며 석재뿐만 아니라 분청사기와 청화백자, 백자 등 다양한 재질의 도자기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형태도 원형과 벼루형, 서책형, 그릇형 등 다채롭다. 무엇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200명이 넘는 조선시대 인물의 묘지명은 영창대군과 사도세자, 한명회, 서거정, 정철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하급 무관과 중인, 개성의 부호, 안변과 의주의 유생(학생)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도 포함돼 있어 조선시대 생활사와 문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특별전은 조선시대 묘지명의 역사적 변천과 제작방법을 보여주는 제1부와 묘지명에 나타난 사연 및 수요 계층 등을 주제로 해 꾸민 제2부로 구성돼 있다. |
이번 특별전에 출품된 사도세자 묘지는 영조가 1762년(영조 38) 직접 지은 것으로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만록’과 달리 사도세자의 잘못을 기록해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19판이 전하는 서거정(1420~1488·경기도박물관 소장) 묘지명이나 충남 공주 계룡산 학봉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한명회(1415~1487) 묘지명 파편, 후대인 1706년(숙종 32) 만들어진 정철(1536~1593) 묘지명 등도 관심을 끄는 자료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의 조원교 학예연구관은 “재질이나 형태 등의 측면에서 고려 묘지의 양식을 계승한 조선시대 개성 사람들의 묘지에서 ‘고려 유민(遺民)’ 의식을 읽어낼 수 있는 등 이번 특별전에 출품된 유물 가운데 흥미로운 자료들이 많다”고 밝혔다. 02-2077-9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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