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권 전문위원 CEO 스토리

2019.11.28 11:16:59

장례를 배우기 위해 홀연 미국으로 출국

 

 

금번 하늘문화원과의  제휴 협약으로 중국 유수의 업체와 고인이송업무를 시작한 인터내셔널F.S  김일권 대표는 본지 존문위원이기도 하다. 

 

'인터내셔널F.S' 김일권 대표는 기자와는 2001년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장례지도자과정 동문이다. 1999년 을지대 장례지도과와 같은 해에 설립된 1년 코스로 당시만해도 장례학과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물던 시절로 엠바밍 영문원서 몇페이지를 흑백으로 시커멓게 복사한 A4 몇 장이 교재로 제공되던 시절, 늦은 밤 수업을 마치고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려 함께 하교하던 추억이 새롭기도 하다.

 

김일권 대표는 그 후 어느 날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장래가 유망되던 전자회사 간부자리를 내던지고 홀연히 미국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미국에서 장례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업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아무리 그래도 그 좋은 직장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다니...기자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시 사연이 본지 기사에 나와 있다.

 

"그가 장례서비스 분야에 입문한 동기는 부친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장례를 맡은 장의사의 일처리가 너무 미숙한 것을 경험하고는 앞으로 다른 사람의 장례에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일념으로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수송 장교로 근무한 후 제대하여 25년간 전자회사에 근무하다가 이 분야에 뛰어 들게 되었다."

 

"2003년 1월 뜻을 두고 도미 유학을 떠나 뉴올리언스 ‘델가도 칼리지’ ‘퓨너럴서비스(Funeral Service)과’에 입학하여 2006년 12월 졸업을 할 때까지 만 4년 동안 수업에 정진하여 미국 "시신보전위생처리사(Embalmer)"와 미국 "장례지도사(Funeral Director)" 등 2개의 자격증을 땄고 졸업한 후에는 미국의 가장 유명한 장례회사인 SCI(SERVICE CORPORATION INTERNATIONAL)에 입사, 센터럴케어센터(CENTRAL CARE CENTER, 임바밍 전문 부서)에서 SCI가 운영하는 6개 장례식장의 엠바밍 처리를 도맡아 했다. 그때 그가 처리한 것만 해도 수백건이 넘는다."

 

전직 대통령 국민장에서의 역할

 

당시 가장 인상에 남는 작업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었다. 본지 기사를 다시 보자.

 

"우리나라에서 엠바밍 분야의 제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김일권 엠바머가 고인의 장례를 의뢰받은 관계자로 부터 긴급 연락을 받은 것은 (2009년)5월23일 서거 당일 오후 2시경이었다. 중요한 일로 수고 좀 해주어야겠으니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오후 4시30분 경 다시 연락이 오기를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했다고 말하고 급히 좀 와달라고 하는 전화에 그는 평소에 준비해 둔대로 장비를 체크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그 시간 만해도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양산 부산대학교병원으로 가야할지 김해 봉하마을로 가야할지 확답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오후 5시30분경 장비를 갖춘 차량으로 서울을 출발하여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연락을 받은 일행을 중도에 만나 현지 사정을 전해 듣기로는 지금 막 고인의 시신이 양산 부산대 병원을 떠나 김해 봉하마을로 떠났다고 한다. 자연 행선지도 김해로 확정하고 계속 달렸다. 그가 김해로 들어 선 것은 자정이 가까웠다. 봉하마을 회관으로 들어서니 고인의 시신은 마을회관에 안치되어 병풍을 두르고 제례상을 차려놓은 채 친지들은 주위에 둘러 앉아 있었다. 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옮기고 싶어도 이미 구름처럼 모여드는 조문객들과 취재기자들 때문에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시점은 가족장이냐 국민장이냐를 결정을 못한 시점이기도 했다.

 

가족들과 친지들이 시신의 보전을 결정한 뒤 제례상을 일단 치우고 그 때까지 회관 안에 있던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낸 후 경호원들이 출입구를 지키는 가운데 엠바밍(EMBALMING)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가족장이든 국민장이든 시설이 갖추어진 병원에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시신의 부패방지를 위한 보전처리가 절실하게 되었다.

 

엠바밍을 위한 테이블을 펼치고 장비를 정리하여 엠바밍에 착수한 것은 이튿날 오전 2시경부터였다. 정성을 들여 3시간 30분에 걸친 엠바밍을 한 후 고인의 시신을 다시 관속에 모신 상태로 있다가 입관을 마친 후 국민장 장소로 결정된 서울 경복궁으로 운구하게 되었다. 이번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르는 과정에서 그가 느낀 점은 국가적 대사에 대비한 준비가 평소에 너무 소홀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점,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시신을 모신 자리에 대해서도 유사시에 대비한 준비가 있어야겠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경황이 없었다 하더라도 전직 국가원수의 시신을 모신 자리이니 만치 좀 더 품격을 갖춘 자리를 마련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 

 

김일권 대표는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르는 과정에서 그가 느낀 점은 국가적 대사에 대비한 준비가 평소에 너무 소홀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점,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시신을 모신 자리에 대해서도 유사시에 대비한 준비가 있어야겠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경황이 없었다 하더라도 전직 국가원수의 시신을 모신 자리이니 만치 좀 더 품격을 갖춘 자리를 마련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

또 한 가지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흔들림 없이 의전을 치르기 위해서는 필요한 준비를 항상 갖춘 상비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미국의 경우 링컨대통령을 비롯하여 역대 대통령들의 장례 시 엠바밍 과정을 거치듯이 상비조직과 장비 및 시설이 항상 갖추어져 어떠한 경우에도 고인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고 말했다.

 

협약서를 체결한 26일, 그는 다시 한 번 바람직한 장례문화 소신을 피력했다.

 

“미국에서는 장례식장을 ‘Funeral Home’이라고 표현합니다. 한평생 고난의 생애를 마치고

평화로운 가정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안락한 가정으로 여깁니다. 장례식에는 전 가족과 평소 친했던 친구들이 모두 한데 모여 품위 있게 코디한 고인을 바라보며(Viewing) 석별하는 장소가 바로 장례와 장례식장입니다.” 

김동원 기자 info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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