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 새로 들어올 자리가 없어요” - 조용수

  • 등록 2018.09.18 09: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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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을 떠났다.
내가 떠나기 전 중환자실은 지옥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대학병원이다. 급한 불을 끄는 곳이다. 여기서 치료를 끝장보려 하면 안된다. 상태가 어느정도 좋아진 환자는, 작은 병원으로 옮겨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병원에 빈 자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다른 안좋은 환자를 새로 받으려면, 빈 자리가 필요하니까. 환자의 장기 적체가 심해졌다. 급성기를 넘겨, 작은 병원에서도 충분히 치료 가능한 환자들이 있다. 식물인간처럼, 호전 없이 연명치료만 필요한 환자들도 있다. 이렇게 만성화된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줄었다. A병원은 최근 중환자실을 폐쇄했다고 한다. B병원은 축소 운영한다고 한다. C병원은 명목상만 운영중인 듯하다. 환자를 받겠다는 병원이 도통 없다. 중환자는 수지타산이 안맞는 게다. 중환자 돌보는 비용이 원체 비싼 탓이다. 시설, 장비, 인력에 들어가는 이 아주 크다. 진료비만으로는 유지가 불가능하고, 그나마 적자를 면하려면 나라에서 지원금을 잘 받아내야 한다. 그런데 돈 타내는 게 쉽지도 않다. 규제의 천국답게,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규정을 들이민다. 못지키면 지원이 끊기는데, 다 지키자니 가랑이가 찢어진다. 그렇다고 돈을 억수로 주는 것도 아니다 보니 그냥 때려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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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환자실을 유지하는 병원은, 지역사회 홍보 목적이다.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을 지니고 있으면, 병원 사이즈를 주위에 자랑할 수 있으니까. 좀 하는 병원이란 이미지 메이킹으로 환자 유치에 도움이 된달까? 섣불리 폐쇄했다 까딱 잘못하면 2류로 밀릴까봐 울며 겨자먹기로 유지한다. 그러니 그냥 딱 명맥만 유지하고 싶은 게 본심이다. 그래서 둘 중 하나다. 치료가 끝나 떠안을 리스크가 없는 환자. 혹은 호전이 불가능해 보호자가 치료 포기에 서명한 환자. 이 두 종류의 환자만을 받으려한다. 돈이 얼마 되지 않으니 위험을 안을 생각이 없다. 혹시 환자가 나빠져 멱살 잡히거나 돈 물어 줄 것 같으면, 애초에 환자 받기를 거부한다. 심지어 환자들마저 눈높이가 높다. 겨우 이송이 결정됐는데, 환자가 그걸 거부한다. 두 발로 걸어 집으로 돌아가든, 누운채 장례식장을 가든, 이 병원에서 끝장을 보겠다고 버틴다. 대학병원이나 2차병원이나 비용에 차이가 거의 없다보니, 기왕이면 큰 병원에 있기를 고집한다.

순환이 꽉 막혀있다. 새로운 환자, 더 심각한 환자 의뢰가 들어와도, 받을 자리가 없다. 매일 수 많은 심각한 환자가 대학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나랏님은 우리한테 장기적체 해결하라고 압박한다. 자꾸 평가를 하고, 지원금 끊는다고 협박한다. 그때마다 병원 경영진은 교수를, 교수는 전공의를 내리갈굼 해보지만 해결책은 없다. 갈굼을 참다 못한 전공의가 일을 때려치고 나갈뿐. 2차병원도 리스크를 안고 중환자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순환이 일어나야 우리도 빈 자리가 생긴다. 그래야 2차병원에서 새로 더 심한 환자가 생겼을때, 우리가 그 환자를 다시 흡수할게 아닌가? 지금은 안좋은 환자 전원 문의 받으면 우리 대답은 맨날 똑같다.

 “병원에 자리가 없어요.”

그 환자들 다들 어디서, 치료는 제대로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얘기하면 대안이랍시고, 환자 이송을 거부하면 처벌하는 식의 새로운 규제만 또 잔뜩 만들어낸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냥 한국을 떠났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출처 : 제3의길]
기자 info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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