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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죽은 뒤에도 존엄은 계속되어야 한다

―사후존엄 확보를 위한 제언

죽은 뒤에도 존엄은 계속되어야 한다

― 사후존엄 확보를 위한 제언

김두년(중원대학교 명예교수, 법학박사)


우리는 흔히 “인간은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 호스피스·완화의료, 웰다잉 운동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존엄은 사망하는 순간 끝나는 것인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동안 존중받아야 할 인간의 의사가 죽음과 동시에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인간의 존엄을 온전히 보장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자신이 죽은 뒤 누가 장례를 치를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것인지, 화장 후 유골을 어떻게 할 것인지, 남겨진 유품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등에 대한 생전의 의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이것을 필자는 ‘사후존엄’​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 사회가 사후존엄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이유는 가족의 모습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사망하면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이 장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비혼·무자녀 가구, 가족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장례제도 만으로는 현실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려워지고 있다.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연고자’를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의 직계비속, 부모 외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의 순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정한 행정기관이나 치료·보호기관의 장,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사람도 포함한다.

 

한편 보건복지부의 「장사업무 안내」에서는 무연고 시신을 연고자가 없는 경우,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뿐 아니라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까지 포함하여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 제2항이다. 시장·군수·구청장은 무연고 사망자가 생전에 장기적·지속적인 친분관계를 맺은 사람이나 종교활동·사회적 연대활동 등을 함께한 사람, 또는 사망자가 생전에 본인이 서명한 문서나 민법상 유언의 방식으로 지정한 사람이 희망하는 경우 그 사람에게 장례의식을 주관하게 할 수 있다.

 

필자는 이것이 매우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본다.

우리 법이 비록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혈연이 아닌 ‘고인이 신뢰했던 사람’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맡길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는 하다.

 

현재 이러한 장례주관자 지정은 기본적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처리하는 제도 안에 들어가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국민이 생전에 “내 장례는 이 사람에게 맡기겠다”고 자유롭게 지정하고, 그 의사가 사후에 일반적으로 법적 효력을 갖도록 하는 보편적 장례주관자 지정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자신의 장례를 맡길 사람을 선택할 권리가 무연고 사망의 상황에서만 작동해야 하는가?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도 사정은 다양하다. 자녀가 외국에 거주할 수도 있고, 오랜 기간 가족과 교류 없이 살아온 사람도 있다. 법률상 가족보다 오랫동안 함께 생활한 동반자나 친구, 이웃을 더 신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가족관계가 원만하더라도 본인이 자신의 장례를 특정한 사람에게 맡기고 싶을 수도 있다.

 

따라서 현행 무연고 사망자 장례주관 제도에서 인정하기 시작한 ‘생전 지정’의 원리를 일반 국민에게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를 ‘사후장례주관자 지정제도’​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한다. 누구나 생전에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을 장례주관자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족이 없는 사람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가족이 있든 없든 자신의 마지막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생전의 유언장이나 희망서가 있으면 혈족에 우선하여 사자의 유체처분권을 인정하는 입법례가 있다.

 

물론 가족의 역할을 없애거나 전통적인 가족장례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앞으로도 장례의 가장 중요한 주체일 것이다. 다만 가족 중심의 장례원칙 위에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또 하나의 통로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장례주관자 지정과 함께 자신의 장례방식에 관한 의사도 미리 남길 수 있어야 한다. 화장 여부, 종교의식, 장례 규모, 유골의 처리방법, 봉안·자연장·산분장에 관한 희망, 장례비용의 부담방법, 유품정리 등에 관한 기본적인 의사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는 지정서 한 장을 작성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정된 사람이 실제 장례를 수행하려면 법적 권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장사법에 따라 장례를 주관할 수 있게 된 사람이라도 가족이 아니라면 사망진단서·검안서 등 장례절차에 필요한 의료증명서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장례를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은 인정하면서 그 장례를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권한은 충분히 연결하지 못하는 제도적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의료법」 제17조도 함께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적법하게 지정된 장례주관자에게는 장례 수행에 필요한 범위에서 사망진단서·검안서 등 최소한의 증명서를 교부받을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사망자의 의료정보 보호도 중요하다. 지정된 장례주관자에게 진료기록 전체를 공개하자는 것이 아니다. 장례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망 관련 증명서로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지정자의 신원과 지정서의 진정성을 확인하며, 지정의 변경·철회와 가족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의 조정절차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후존엄은 장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웰다잉을 주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 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연명의료에 관한 뜻을 미리 밝혀두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기결정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지막은 임종에서 끝나지 않는다. ①연명의료 결정 → ②임종 → ③사망 → ④장례주관 → ⑤장례 → ⑤화장 → ⑥유골봉안 → ⑦사후행정처리 → ⑧유품정리라는 일련의 과정이 한 사람의 삶의 마지막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웰다잉 정책은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을 넘어 ‘죽은 뒤에도 자신의 뜻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현재 무연고 사망자에게 적용되고 있는 생전 장례주관자 지정의 원리를 일반 국민에게도 확대하고, 둘째, 누구나 생전에 자신의 장례주관자를 지정하거나 변경·철회할 수 있도록 하며, 셋째, 지정된 장례주관자에게 장례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법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넷째, 장례방식과 유골처리 등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기록하고 확인할 수 있는 표준화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사망진단서 발급, 사망신고, 장례, 화장, 봉안·자연장·산분장, 유품정리까지 이어지는 사후 절차가 생전의 자기결정권과 연결되는 체계도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는 가족을 밀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족과 함께해 온 우리의 장례문화를 존중하면서도 변화한 가족구조와 사회적 관계를 제도 안에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장례제도의 중요한 질문이 “고인의 가족이 누구인가”​였다면 앞으로는 여기에 하나의 질문을 더해야 한다. “고인은 자신의 마지막을 누구에게 맡기고 싶어 하는가.” 우리는 태어날 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지만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마지막은 준비할 수 있다.

누구에게 나의 마지막을 맡길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떠나고 싶은지, 그리고 내가 떠난 뒤 남은 것들을 어떻게 정리해 주기를 바라는지를 미리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그 의사가 가능한 한 존중되고 실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웰다잉에 관한 우리의 질문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어떻게 존엄하게 죽을 것인가”에서 “죽은 뒤에도 어떻게 존엄을 지킬 것인가”로. 삶의 존엄이 죽음과 동시에 사라지지 않는 사회,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하고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1인가구와 무연고 사망이 증가하는 시대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새로운 복지이며, 필자가 생각하는 ‘사후존엄’의 출발점​이자 안장될 권리를 실현하는 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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