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개발이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는 수목장 겸용 분골함이 한국환경산업기술원으로부터 환경표지인증서를 받았다. 다가올 자연장 시대에 환경보호와 자연장 보급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국 팔도에서 다 모였다.장례문화포럼, 2009년 6월 일본 장례문화 견학을 함께 다녀온 사람들의 동아리다. 학생들 빼고 는 22명이었는데, 그 중에 16명이 바쁜 시간을 틈타 대구에서 모였다. 업계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한 역할을 하는 인재들이다. 신문사대표, 교수, 장례식장 경영자, 상조회사 대표, 꽃업자, 분골함 제조업자, IT사업자, 컨설팅업자, 묘지업자, 타분야 사업자..... 실로 골고루 모여 전문분야가 다양하다. 3개월 만에 만났으니 일단 서로 반가웠다. 사업 잘 되냐고 서로 묻지도 않았다. 그냥 정다우면 그만이었다. 우리가 일본을 갔을 때는 4박 5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날들을 외국 장례문화를 하나라도 더 보고 더 익히려고 시간을 쪼개며 분주했고 관광 코스를 돌때는 한때의 직업의 무거운 때를 벗겨내는 것 같아 유쾌했고 전용버스 안에서는 장례문화를 논하고 듣느라 진지한 시간들이었지.....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할 현장 학습이었고, 생생한 시청각 학습이기도 했다.남녀가 구분이 없고 노소의 차별도 없었다. 다만 장례가 좋아진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상하게 유쾌한 모임이었다. 그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우정을 다지기 위해 자발적으로 구성한 동아리였다.
자연장은 우리나라는 수목,화초,잔디의 밑에 골분을 묻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일본은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고 사꾸라수목장은 도시형수목장으로 대부분 분양되어 동경도민의 선호하는 수목장인데 아래 내용은 일본의 관련 전문가들의 글을 전재하여 도움이 되고자 한다-편집자주일본의 自然葬과 사꾸라 樹木葬 [출처 : 자기다운 장례와 묘에 대해 전부를 아는 책(2009.5.10 1판 三省堂)] 1. 自然葬 (현재의 자연장과 앞으로의 자연장) - 西俣總平(NPO법인인 葬送의 자유를 권하는 會의 理事) 동경대 문학부출신으로 공동통신사의 과학부장, 논설위원 등 역임하고 퇴직 후 장송의 자유를 권하는 會의 사무국장과 이사로 근무.1938년생 2. 사꾸라 수목장(시대의 요청과 시민에 의한 네트워크의 대두) - 井上治代(동양대 라이프디자인학부교수, 사회학박사, NPO법인 엔딩센터의 이사장. 대학에서는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과 일본, 스웨덴의 죽음과 관련된 문화, 死者장송 의례를 연구 중▶ 1. 自然葬 (현재의 자연장과 앞으로의 자연장)자연장이라고 하는 용어가 사전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95년도版으로, “산골 등에 의해 자연에 회귀시키려고 하는 장의”라고 설명
지난 8월24일부터 9월 1일까지 9일간 관련 행정관청 공무원과 관련 단체 및 관련학교 교수 등 11명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 등 3개국을 순방한 바 있다. 이 일정은 새로운 장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빙장(氷葬)’ 관련 해외 연수단으로서 보건복지가족부가 주관한 업무일정이었다. 우리나라는 2008년 7월 22일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이 대표 발의하여 동년 8월 29일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 회부 되었으며, 현재 국회 관련 소위원회에 회부되어 80% 정도 진척된 가운데 세기의 마지막 장법으로 알려진「빙장(氷葬) 법(제도)를」도입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국회논의의 참고자료 수집 목적 등으로 빙장기계 개발자를 직접 방문하여 빙장의 원리를 확인하는 동시에 해당 국가와 유관기관을 방문하여 도입의 주장, 배경 및 진행경과 등을 알아보고자 관련 공무원 및 연구기관, 장사관련 협회가 참여하여 실시한 연수 일정이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장사행정의 주무부서인 보건복지가족부가 이 연수를 주관했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보고 본지는 연수단의 일원으로 함께 유럽을 다녀온 동국대불교대학원 생사의례학과 이남우 외래교수로부터 관련
우리 나라나 중국,일본 등 동양의 문화권에서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의식은 하나의 가족화합의 상징이라고 할수있다. 그래서 매년 그 사람이 죽은 날이 되면 온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를 위한 의식을 행한다. 촛불을 키우고 향을 피우며 제사상 위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차려 놓고 그들을 기억해 보는 시간을 잦곤 한다. 멕시코에서도 이러한 동양의 문화와 비슷한 행사가 있다. 바로 11월1일과 2일 이틀에 결친 멕시코의 오랜 전통축제 중 하나인 죽은 자들의 날이 그것이다. 죽은 자들의 날은 말 그대로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서 행해지는 행사로써 이 기간 즈음되면 각 가정이나 공공장소에는 죽은 영혼을 위한 제단이 마련되고, 당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들이 묻혀있는 묘지를 찾아가서 그들의 무덤을 청소하고,그들의 비석 앞에 꽃을 놓고, 촛불을 켜놓곤 한다. 이러한 전통의 기원은 스페인 정복 이전인 아즈텍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 갈수 있다. 아스텍 사람들은 사고나 불치병으로 죽은 사람들은 틀라로칸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틀랄록이라는 신이 그들을 맞이한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죽은 영혼들은 나비를 사냥하거나 달콤한 과일을 먹거나 또는 공놀이
▶3개월내 재(再)시도 가능성 높아… 적극 관심을 ▶자살 시도한 사람의 27% 다시 시도해 사망▶가족도 엄청난 스트레스 함께 전문가 상담 받아야그날은 약을 먹고 며칠 아무 생각 없이 푹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강원도 원주의 강희연(37·가명)씨는 지난 2일 자택 거실에서 의외로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씨는 지난 7월 이 집에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자살을 시도한 자살 시도자다.6개월 전까지만 해도 강씨는 동갑내기 남편과 딸(10)·아들(8)을 잘 키우기 위해 열심히 사는 보통 아줌마였다. 그런데 올해 3월 직장 상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심한 우울증을 앓으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스트레스와 충격으로 심신이 황폐해졌다. 강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에는 몰랐는데, 진실을 밝히겠다며 병원과 경찰서를 오가며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라고 말했다.집에 있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뒷산을 몇 시간씩 헤매고 다녔어요. 김치찌개를 끓이는데 집안에 노란색 나비가 날아들었고, 어렵사리 잠이 들면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만 꾸었어요.
조선조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의 왕릉이 세계적으로 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에 간단히 조명해 보고자 한다. ▶본받아야 할 왕릉의 조경 철학 요즈음도 소풍을 왕릉으로 가는지 잘 모르겠으나, 4, 50대 나이의 사람들에게는 초등학교나중고등학교 때 한 번쯤 동구릉이나 서오릉으로 소풍을 갔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뭔가 설명을 했는데 그런 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고 김밥을 까먹고 나서 콜라 병을 든 채 무엄하게도 왕릉 꼭대기까지 올라가 석물에 올라타고 신나게 놀았던 기억만 난다. 이 추억 속의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ICOMOS, 즉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에서 서울과 근교의 왕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권고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이유는 두 가지이다. “왕릉들이 유교사상과 토착신앙 등 한국인의 세계관이 반영된 장묘(葬墓) 문화 공간”이라는 점과 “자연경관을 적절하게 융합한 공간 배치와 빼어난 석물(石物) 등 조형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이유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가시적인 공간 구조물이 어떻게 추상적인 덕
초분은 3∼4년 뒤 풀어헤쳐 매장을 한다. 시신의 뼈를 드러내 깨끗이 하는 씻골 과정을 거쳐 땅에 묻는 본장을 하는 것이다. 이런 풍습을 청산도 사람들은 효도의 한 방법으로 여긴다 2009년 5월 11일 오전 8시 완도항 여객선터미널. 안개가 자욱하다.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가는 신지대교는 물론 바로 앞에 있는 섬, 주도 역시 보이지 않는다. 완도항에 있는 주도는 갖가지 상록수와 희귀식물이 많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지난해 개장해 완도의 새로운 명물이 된 일출공원도 방향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청산도로 가는 첫 배에 몸을 실었다. 갑판 위의 바람이 쌀쌀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금세 몸이 싸늘해진다. 한낮의 날씨는 여름 같지만 아침, 그것도 바다의 아침은 추웠다. 풍광도 전혀 없다. 객실로 들어가 신발을 벗고 온기가 전해지는 바닥에 앉으니 온몸이 나른해진다. 간밤에 잠을 설친 탓에 피로가 밀려온다. 평일이지만 객실에는 여행객들이 여럿 보인다. 그들의 들뜬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난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은 벌써 드러누웠다. 나와 같은 목적으로 섬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문상객으로 와서 장지로 함께 가는 이들이다. 우리가 따르는 고인은 몇
▶16세기 이후 회격묘 일색▶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소장 연웅)가 15일 두번째 조선시대 벽화묘 발견 소식을 전했다. 교하노씨(交河盧氏) 문중이 강원도 원주시 동화리의 충정공(忠正公) 노회신(盧懷愼.1415-1456) 묘를 충남 청양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석실(石室) 벽면에서 청룡(靑龍)ㆍ백호(白虎)ㆍ현무(玄武)ㆍ주작(朱雀)으로 구성되는 사신도(四神圖)를 비롯한 벽화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조선시대 상장의례(喪葬儀禮) 전문가인 국립고궁박물관 정종수 관장은 시간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이런 벽화묘는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노회신이 사망한 뒤 조선사회에서 석실묘가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해 16세기에는 회격묘(灰隔墓)라는 새로운 묘제(墓制)에 밀려 종적을 감췄으며 그에 따라 무덤 벽화 또한 그릴 수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회신 묘는 석실묘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종말기에 축조한 무덤이 되는 셈이다. 석실분이란 글자 그대로 시신을 안치하는 공간을 돌로 쌓은 무덤 양식을 말한다. 고려시대 고분 축조 판세를 완전히 장악하고, 조선 초기까지 유행한 이런 석실분에서 돌은 대체로 크고 납작하게 잘 다듬은 판돌을 이용한다. 회격묘는 지하로
▶100년전 서울의 모습◀ 옛시절의 우리네 자화상들이 희미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지명을 정확하게 알수 없어 아쉽다. [ 한국전통예절연구원] 제공
▶중국 西安 당고조 주변 도굴된 무덤에서▶“남국(南國) 사람의 얼굴처럼 아름다우니 봄날의 숲과 가을단풍 같았다.▶백제 중앙관서 외경부 목간도 공개 ▶당으로 끌려간 백제 의자왕의 증손녀 부부의 묘지명이 당나라 도읍 시안(西安)에서 발견됐다. 당으로 끌려간 백제 의자왕의 증손녀의 묘지명이 당나라 옛 도읍 장안(長安)인 시안(西安)의 당 고조 이연(李淵.566-635)의 무덤인 헌릉(獻陵) 주변 도굴된 무덤에서 그의 남편 이옹(李邕) 묘지명과 함께 발견됐다. 이 묘지명은 2004년 조사에서 출토된 것으로 부여태비의 가계와 생애, 인품 등을 기록했다. 또, 백제 정부가 곡물을 빌려주고 그 증빙서류로 작성한 공문서 목간이 발견된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수습된 유물 중에 백제 중앙정부 관서인 외경부(外경部)라는 글자가 적힌 목간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런 사실들은 백제학회(회장 양기석)가 15일 오후 충북대 인문대학 시청각실에서 백제의 신출토 문자자료를 주제로 개최하는 제1회 정기발표회를 통해 공개된다. 이 자리에서 백제 부흥운동사 전공인 김영관 청계천문화관장은 2004년 중국 산시(陝西)고고연구소가 시안 북쪽에 있는 당 고조 이연(李淵.566-635)의 무덤인 헌릉(獻陵
▶발해의 고구려 전통 계승과 동북부 영역을 보여주는 ‘발해 왕성급 유적(城)’발굴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 역사학고고학민속학연구소와 공동으로 2008년 9월 3일부터 10월 2일까지 연해주 중북부지역에 위치하는 발해 유적인 콕샤로프카-1 평지성(平地城)을 발굴조사하였다. 콕샤로프카-1 평지성은 연해주에 남아있는 발해유적으로는 마리야노프카 성과함께 가장 북편에 위치하는 성으로, 우수리 강 및 그 지류인 콕샤로프카 강을 해자처럼 끼고 있는 평지성이다. 성의 규모는 북벽 405m, 동벽 650m, 남벽 250m, 서벽 340m로 성벽길이 1,645m, 전체면적 160,000㎡에 달하는 대규모 성이다. 평면형태는 타원형을 이룬다. 성벽의 최고 높이는 6m, 너비는 10~14m로 내부에 석재를 쌓아 강화하고 내외면을 흙으로 쌓았다. 성벽, 북문, 서문, 문지의 ‘ㄱ’자형 옹, 성 내부 문화층 등 성 전체가 현재까지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발굴조사는 북문에서 가까운 성 내부 북편에서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발해의 전형적인 온돌시설을 갖춘 대규모 건물지와 다수의 발해 유물이 발굴되었다. 조사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6차 한·러 공동 연해주 발해유적 발굴조사단 발해 고분군과 주거유적 발굴조사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 이종철)와 러시아 극동국립기술대학교 및 과학원 극동지소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는 2008년 6월 25일부터 7월 30일까지 연해주의 체르냐찌노 5 고분군 및 체르냐찌노 2 주거유적에서 제6차 한·러 공동 연해주 발해문화유적 발굴조사(단장 : 한국전통문화학교 정석배 교수)를 실시하였다. 체르냐찌노 5 고분군은 금년도에 29기의 발해고분을 추가로 발굴 조사하여, 모두 188기의 발해고분을 조사한 상태이다. 지금까지 석실분과 토광묘 등 여러 가지 유형의 발해 고분이 조사되었으며, 금년도에는 특히 토기와 장신구 이외에 철제 대도, 창, 찰갑, 화살촉 등 발해 군인들의 무장상태를 보여줄 수 있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철제 대도는 모두 3점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길이가 긴 2점은 절반씩 부러뜨린 상태로 매납되어 있었고, 가장 긴 1점은 길이가 86㎝이다. 찰갑은 모를 죽인 장방형이었으며, 화살촉 중에는 삼익촉이 1점 있는데 연해주의 발해유적에서는 처음 출토된 유형이다. 체르냐찌노 2 주거유적에서는 두 곳(제3~4구역)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제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이 아닌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59주기추모식 맞아 사민필지, 한글 우수성 담긴 기고문 공개해 ▶독립 운동가이자 우리나라 문명화의 선구자인 호모 헐버트(1863~1949) 박사가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바람대로 그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잠들어 있다.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 내 백주년기념교회에서 헐버트 박사 59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 주최로 열린 이날 추도식에는 김형오 국회의장, 이종정 국가보훈처 차장, 차창규 광복회 사무총장, 태미 오버비(TAMI OVERBY)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대표, 신영섭 마포구청장, 김을동 의원 등이 참석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추모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에 맞은 이날 추모식은 더욱 특별하고 남다르다”면서 “숭고한 나라사랑과 고결한 희생정신으로 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박사님의 활동은 암울했던 시절, 우리 국민들에게 크나큰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주셨다”고 추모의 말을 전했다. 또 “지금 대한민국은 안팎의 거센 시련과 도전에 직면해 있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박사님의 뜻을 가슴 깊
■ 아래 화보는 chosun.com에서 발췌한 것으로 장묘문화의 한 단면이란 측면에서만 소개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편집자 주]▶북한의 금수산 의사당은 김일성 사망후 그 시신을 안치한 금수산기념궁전즉 김일성 시신궁전으로 바뀌었다. 김일성이 미라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곳이다. 3백만명이 굶어죽던 대아사 기간인 95년에 착공했고 의사당을 시신궁전으로 재건축하는데 무려 8억9천만 달러가 들어갔다. 당시의 국제가격으로 치면 강냉이 6백만 톤으로 2천3백만 인민이 3년간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건축비다.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www.uriminzokkiri.com)는 최근 화첩“수령영생위업 실현을 위하여”를 소개하면서, 김일성 시신궁전 내부를 소개했다. 화첩은 금수산기념궁전 건설과 영생탑 건설, 주체연호 및 태양절 제정, 회고록(계승본)발행, 혁명사적지 및 전적지들을 새롭게 발굴하고 꾸릴 데 대한 김정일의 활동을 100여장의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화첩 첫 부분에 소개된 금수산기념궁전은 대성구역 미암동 1973년 3월에 금수산 의사당으로 착공되어 1977년 4월 김일성 탄생 65돌에 준공된 주석궁이다. 김일성은 스스로 죽고나면 대성산 혁명열사능에 묻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