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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마지막 궁중 장식화가 97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연수)은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창덕궁 희정당 벽화' 특별전을 통해 오늘(13일)부터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를 선보인다. 1920년 제작되어 창덕궁 희정당 벽면을 장식했던 작품이다. 두 벽화 모두 구한말·일제강점기 유명 서화가였던 해강(海岡) 김규진(1868~1933)이 그렸다.
각각 강원도 통천 앞바다에서 바라본 총석정과 고성에 있는 외금강 기암괴석의 광활한 풍경을 담았다. 두 작품 모두 창호나 병풍에 주로 그렸던 기존 궁중 장식화와는 달리 비단 7폭을 이은 압도적 규모가 특징이다. 김연수 관장은 "세로 196㎝, 가로 883㎝에 달하는 크기는 한국 전통 회화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며 "금강산을 답사하고 실경(實景)을 그렸다는 점에서 전통 회화가 근대 화법의 영향 아래 변모해가는 과정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석정절경도를 그리기 위해 김규진이 금강산을 답사하고 제작한 초본 '해금강총석도(海金岡叢石圖)'도 함께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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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당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됐다. 1920년 복원 과정에서 서양식 실내 구조를 도입했고, 천장이 높아지면서 그림을 걸 공간이 생겼다.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비단에 그림을 그려 종이에 배접(褙接)하고 벽에 붙였다. 김규진은 청나라에서 그림 유학을 했고 영친왕의 서화(書畵) 선생을 맡았다. 또 고종의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이기도 했다. 금강산 구룡폭포 바위에 새겨진 19m 크기 '미륵불' 각자(刻字)도 그의 작품이다.
희정당 벽화는 과거 궁중 장식화 소재로 잘 쓰이지 않았던 금강산이 새로운 주제로 등장했음을 알려준다. 1914년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금강산이 대중적인 관광지로 떠올랐다는 시대적 맥락도 엿보인다. 벽화는 일반 출입이 금지됐던 창덕궁 희정당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훼손이 심해지면서 2015년 보존 처리를 시작했다. 벽화는 전시 후 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한다. 희정당에는 모사본을 걸어뒀다. 3월 4일까지. (02)3701-7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