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최근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던 생명보험사에 중징계를 내리자 삼성ㆍ한화ㆍ교보생명이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면서 이를 둘러싼 오랜 공방이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논란을 빚어온 ‘자살을 재해사망 특약’에 명시해 판매한 보험계약이 아직도 282만건이 남아있다. 보험사들은 앞으로 이 계약자가 자살할 경우 일반사망보다 2~3배 비싼 재해사망보험금으로 지급해야 할 전망이다. 보험사들은 자살보험금 미지급 2647건에 대해 이번에 모두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자살에 대해 재해사망보험으로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앞으로 자살이 발생할 경우 재해사망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추가 자살자가 나올 경우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감안하면 1조원 가량될 것으로 보험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자살보험금은 자살자 유가족들 사이에서는 “모르면 못 받는 보험금”으로 통용된다. 보험 계약이라는 것이 워낙 복잡하고 미묘해 계약 당사자도 보장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거니와 유가족이 정확하게 짚어서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이상 생보사들이 보장된 금액을 다 내주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자살보험금도 2014년 금감원이 ING생명을 미지급 건으로 징계하기 전까지는 극히 일부 유가족만이 받았을 뿐이다.
자살보험금 사태는 일본 보험사의 약관을 잘못 베껴 ‘보험 가입 2년 후 자살 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재해사망 특약에 그대로 인용하면서 시작됐다. 재해사망은 일반사망보다 2~3배 정도 많은 사망보험금을 지급 받는다. 금감원도 2001년 당시 보험사가 이 약관을 보고했을 때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이 약관은 금감원에 보고돼 승인을 받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생보사들이 똑같이 가져다 쓰면서 2001년 이후 계약자 수가 기하급수로 늘게 된 것이다. 2007년쯤 약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금감원은 2010년이 돼서야 문제의 약관을 수정하도록 했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결말이 향후 또 다른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284만 건의 재해사망특약 중 지금까지 문제가 된 자살보험금 사례는 2400여건에 불과하다. 남은 283만여 계약의 경우 향후 보험 계약자가 자살할 경우 이번과 마찬가지로 자살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다소 비극적인 가정이지만, 예컨대 이 특약에 가입한 말기 암환자가 유가족들이 자살보험금이라도 받을 수 있게 자살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약관 변경 명령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배포된 약관을 다시 수정한 전례가 없는데다 소비자의 권익에 반한다는 소비자단체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보험연구원은 2013년 1월 ‘생명보험의 자살 면책기간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자살에 대한 사망보험금이 지급되는 보험 가입 3년차부터 가입자들의 자살률이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자살 관련 면책기간을 폐지하면 자살률이 줄어들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