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과 취업 준비생들에게 '꿀알바(꿀 같은 아르바이트)'로 불렸던 임상시험 알바에 60대 이상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지난해 한 대형 제약회사가 고혈압·고지혈 관련 의약품 임상시험을 했는데, 지원자 304명 중 절반이 넘는 178명이 60대 이상이었다. 서울 강동구의 한 병원이 진행하는 골다공증 임상시험 지원자 모집에는 2일까지 지원한 66명 가운데 37명이 60대 이상이었다. 임상시험 모집 공고를 대행하는 한 인터넷 업체에는 "꼭 좀 뽑아달라"고 부탁하는 60대 이상의 전화가 1주일에 50통 넘게 걸려온다고 한다.
60대 이상이 임상시험 알바에 몰리는 것은 수당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하려는 의약품 특성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긴 하지만, 대개 병원에서 약을 투여받으면 1회에 평균 4만~5만원, 2박 3일 입원하면 평균 5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일주일 내내 입원하면 100만원 이상 받을 수도 있다. 골다공증 임상시험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는 강동경희대병원 관계자는 "노인분들은 기본적인 시험 관련 내용을 안내받은 뒤 항상 '교통비는 얼마냐' '언제 통장에 입금되느냐'고 물어본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아토피피부염 의약품 임상시험에 참가한 오한솔(65)씨는 총 30만원을 수당으로 받았다. 그는 "연탄 살 생각으로 지원했는데 운 좋게 합격했다"며 "작년에 건물 경비직에서 해고돼 생계가 막막했는데, 앞으로 더 자주 임상시험 알바에 지원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제약업계는 "고령층 의약품 시장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노인 임상시험 대상자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상시험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약에 대한 효능과 부작용 등을 확인할 목적으로 진행한다.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고서는 신약 승인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국내 제약업체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지정한 병원에 임상시험을 의뢰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임상시험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은 편이다.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임상시험 도중 약물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신고가 지난 2011년부터 3년간 총 476건 접수됐다. 단기간에 돈은 많이 받을 수 있지만 위험하다는 뜻에서 임상시험을 '고수익 생체실험 알바'로 부르기도 한다. 고령자를 상대로 한 임상시험이 늘어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령 지원자들이 임상시험의 목적이나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7월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상시험 모집자 공고를 할 때 시험의 목적과 방법, 예측되는 부작용 등을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건국대병원 김태은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신체기능이 떨어지는 고령자는 부작용 가능성이 젊은이들보다 클 수 있기 때문에, 임상시험 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