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강조되면서, 사회적기업에도 훈풍이 불어온다. 사회적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구입하는 것은 물론, 직접 사회적기업을 설립하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자선단체 기부나 자원봉사 중심이었던 기업의 사회적 공헌 활동이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과 설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과 사회적기업의 상생 관계는 아직 제대로 성숙되지 못한 상황이다. 일부 기업들은 홍보를 위해 일회성 이벤트 형식으로 사회적기업의 물품을 구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사회적기업도 연말이 되면 이런 기업의 이벤트를 은근히 기대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혜적 관계 속에서는 사회적기업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기업이 사회적기업의 건전한 생태계를 위해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물품 구매를 넘어선 기업의 지원 = 사회적기업에 대한 기업의 관심은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 시행과 함께 시작됐다. 취약계층에게 일자리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은 기업의 사회공헌 취지에 정확히 부합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주로 사회적기업의 물품을 구매하는 형식이었다. 특히, 공기업들은 정부가 사회적기업 제품에 대한 구매 비율을 공시하는 등 구매 촉진에 나서면서 2012년 430억 원어치의 사회적기업 물품을 산 데 이어, 지난해 그 목표치를 709억 원 수준으로 높이기도 했다.
이 같은 제품 구매는 자연스럽게 사회적기업의 수익 창출로 이어져 운영비, 기술개발비 마련을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업이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조직인 만큼 더 큰 역할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정무성(사회복지학·숭실사이버대 부총장) 숭실대 교수는 “사회적기업이 창의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정부가 이를 받쳐주는 데는 경제적으로, 인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기업이 경험이 많은 전문 인력을 통해 이들의 아이디어를 시장화할 수 있도록 돕고, 필요시에는 투자도 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과 사회적기업의 상생 = 기업은 이렇듯 지속적인 관심 속에 사회적기업의 제품 구매에 나서는 한편, 나아가 사회적기업의 자생력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는 최근 학계와 경영계에서 CSR를 넘어 ‘공유 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이란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사회적기업뿐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CSR가 사회적 공헌 활동을 통한 ‘부의 사회적 환원’ 성격이 강하다면 CSV는 부의 환원을 넘어 사회 공헌이 하나의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기업은 사회적기업의 성장을 도우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또한 사회적기업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
반대로 사회적기업은 기업의 지원을 통해 성장하고 기업에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적기업은 상하 관계가 아닌 파트너의 관계로 올라선다. 현대자동차가 지원한 소셜벤처인 ‘H-점프스쿨’이 좋은 예다. H-점프스쿨은 대학생과 직장인, 소외계층 청소년의 멘토링을 연계해주는 사업인데, 현대차는 이를 사회적가치가 높은 모델이라고 여겨 이 기업을 자사의 CSR사업 파트너로 삼고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사업적 연계를 통한 파트너십 강화 = 최근에는 기업과 사회적기업이 사업적 연계를 통해 ‘윈-윈’ 관계를 형성하는 움직임도 시도된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이런 관점에서 ‘1사 1사회적기업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이 추구하는 사회적가치와 사회적기업의 소셜미션이 맞아떨어질 때 사업을 연계하는 형식으로, 현재 50여 개의 기업이 참여한다. 특히, 지난해 사회적기업 관련 사회 공헌 활동을 시작한 한국남동발전은 이를 잘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동발전은 중소기업 성과공유 수익금 제도를 만들어, 중소기업에 투자하거나 함께 사업을 펼쳐 얻은 수익을 다시 사회적기업과 함께 하는 사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회공헌 선순환 모델을 구축했다. 남동발전은 중소기업과 협력하는 한편 여기서 나온 수익금으로 따뜻한 에너지를 소외계층에게 지원한다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기업인 ‘바이맘’을 지원한다. 바이맘은 룸텐트(방한용 실내텐트)를 개발·생산하는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남동발전은 이 룸텐트를 지역소외계층에게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을 돕고 있다.
조영복 사회적기업학회장(부산대 교수)은 “이런 기업과 사회적기업의 사업적 연계는 단발적인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며 “기업들이 사회적경제를 키울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