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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땅에서 거부를 이룬 사업가의 교훈

‘담대한 용기로 절벽 같은 상황에 맞서라’ 

포브스 '미국 400대 부자' 특별호(2016년 10월)에 나온 장도원·장진숙 포에버21 대표. [사진 포브스]
▲ 포브스 '미국 400대 부자' 특별호(2016년 10월)에 나온 장도원·장진숙 포에버21 대표. [사진 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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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 한국은 가난했다. 기회를 찾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 가난이 지긋지긋했던 한 소년은 이를 벗어나고자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미국 이민을 꿈꾸기 시작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이민 준비에 나섰다. 낯선 나라에서의 이민생활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결혼도 했다. 1981년 그의 나이 26살에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이민을 떠난다. 

 

도착 다음 날부터 무일푼 젊은 부부는 닥치는 대로 일하기 시작한다. 먼저 가판대에서 구직 정보를 얻어 식당 접시 닦는 일을 잡았다. 커피숍 허드렛일 알바, 주유소 종업원, 건물 경비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으나 ‘아메리칸 드림’은 쉽지 않았다. 그때 그는 하루 19시간씩 일했다고 회고한다.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는 주유소에서였다. 고급 차를 탄 재력가 중엔 의류업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3년간 모은 돈 1만1000달러로 1984년 의류매장을 열어 첫해에 8억 원 상당의 매출을 올린다. 포에버21(Forever 21)의 창업자, 장도원 씨의 간략한 이민사다. 

장도원씨 부부 재산 6조원, 그 후 30여 년 만에 전 세계 50개국에 790개 매장에서 4만3000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연 매출 4조8000억 원을 올리는 패션의류 체인으로 성장했다. 그의 부부 재산은 6조 원 정도로 포브스가 추산한다.  

 

조지 소로스
▲ 조지 소로스

 

나치에 점령 당한 헝가리에 유대인 출신 청년이 있었다. 당시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에 희생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헝가리 농무부 공직자의 대자 노릇으로 신분을 속여 체포를 면한다. 2차 대전 직후인 1947년 조국을 떠나 새 세상을 찾아 영국 런던으로 간다. 철도 노무자, 술집 웨이터 생활로 돈을 벌면서 런던 경제대학에서 공부한다. 

 

1954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그 전공으로는 직업을 구하기 어려워 여행 상품 세일즈맨으로 일 했으나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좀 더 나은 직업을 찾아서 은행에 구직신청을 했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곳서 소식이 온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면서 부자의 돈 관리도 해주는 투자은행이었다. 

 

그곳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주식시장에서 현·선물 가격 차이를 이용하는 차익거래(Arbitrage)로 탁월한 성과를 낸 것이다. 1956년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 당시 미국 투자자에게 인기가 높았던 유럽 주식을 담당한다. 그는 독립을 결심하고, 5년간 50만 달러의 종잣돈을 모았다. 투기꾼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하고, 투자의 달인으로도 평가받는 조지 소로스의 젊은 날 얘기다. 

 

FOREVER21 샵 전경
▲ FOREVER21 샵 전경

 

장도원과 조지 소로스의 공통 DNA

 

각박한 삶을 살아야 했던 조국을 떠나 낯선 이국땅으로 가 대단한 부를 일군 두 사람. 한 사람은 한국, 다른 한 사람은 헝가리 출신이지만 그들의 성공에는 공통적인 DNA가 있다. 무엇일까. 

 

첫째, 침착함이다. 주어진 환경을 원망하는 대신 운명을 쿨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낯선 땅을 찾아 과감히 도전했다. 익숙한 땅, 부모 형제의 품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 

 

둘째,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단계로 종잣돈 모으기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맨바닥에서 종잣돈을 모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일단 출발은 작지만 일정 규모의 돈이 모이면 그 다음은 좀 쉽다. 아이디어가 있고 유망 사업분야를 찾으면 돈이 불어나기 시작한다. 

 

셋째, 그들은 당시에 유망 비즈니스 아이템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포착해 사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로 확장했다. 장도원은 최신 패션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제작한 다음 빠르게 유통했고, 소로스는 시세의 변화무쌍한 추세를 정확하게 판단해 차익거래와 외환 투자로 돈을 벌었다. 기회를 선점하려면 안목과 함께 주저없이 배팅하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넷째, 그들은 상당한 부를 일구었으나 소박하게 산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반듯한 외국 부자의 공통된 특징이다. 허투루 돈을 낭비하거나 자식들의 과소비와 갑질로 망가지는 한국 졸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섯째, 두 사람 모두 일군 부를 움켜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통 큰 기부를 한다. 장도원은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예배에 참석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원봉사와 관련한 일에 재산을 쾌척한다고 한다. 조지 소로스는 그의 스승 칼 포퍼가 주창하는 열린 사회 프로젝트에 아낌없이 기부하고 동유럽에 대학을 설립하고 수많은 재단을 만들었다. 


위에서 본 두 사람의 젊은 시절 인생 여정은 험난했다. 그러나 그들은 침착함과 대담한 모험정신을 바탕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쉽지 않은 길을 극복하고 우뚝 선 사람들이다. 크게 성취한 사람에게는 남다른 DNA가 있다. 꿈을 위해 끈기로 버텨내는 근성, 미지의 세계를 찾아 모험하고 도전하는 다부짐이 그것이다. 

 

여기저기서 내일은커녕 오늘 살기도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특히 젊은이의 일자리 부족이 심각하다. 저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어렵고 급박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앞을 가로막는 장벽을 뛰어넘어 지구 저편 이국땅에서 기회를 찾았다. 우리에게 ‘용기를 내 절벽 같은 상황에 맞서보라’고 하는 것 같다. 이 땅이 좁다면 저 땅에 가서라도 부딪쳐보고 올인해 모험을 감수하는 용기를 가져보기를 바란다.  (글: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출처: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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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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