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애도하는 ‘자만시’(自挽詩)의 세계

2014.08.12 16:45:43

“죽어서 만사(挽詞)를 받을 수 있을까, 받을 수 없으리니,

예로부터 어떤 사람이 만사를 짓는가?

하물며 나는 다른 사람에게 구하는 말도 못해서,

평생을 자술하여 스스로 내 죽음 전송하네.”


17세기 영남 안동의 학자 유인배가 쓴 ‘자만’(自挽) 10수 중 다섯번째 노래다. 자만 또는 자만시란 시를 쓰는 이가 자신의 죽음을 가정하고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독특한 시형식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가 조선시대 문인들의 자만시를 모아 번역하고 해설을 덧붙여 <내 무덤으로 가는 이 길>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挽詩) 양식이 중국 한나라 시대 이후 오랜 전통을 지니는 데 반해, 자만시는 송나라 때 시인 도연명의 <의만가사>를 최초의 전범으로 꼽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 남효온이 1489년 스승에게 보낸 편지의 별지에 쓴 <자만 4장>에 ‘자만’이라는 제목이 처음 나타난다.


“다만 한스럽기는 사람이었을 때에,

참혹하게 여섯 가지 액이 있었다네.

얼굴이 못생겨 여색이 다가오지 않고,

집이 가난하여 술이 넉넉지 못했네.

행실이 더러워서 미치광이로 불렸고,

허리가 곧아 높은 사람 노엽게 했지.

신발이 뚫어져 발꿈치가 돌에 차이고,

집이 낮아 서까래가 이마 때렸다네.”


(남효온 <자만 4장> 중 제1장 부분)


비록 ‘자만’이라는 제목을 단 것은 아니지만 매월당 김시습이 1486년께 지은 <나 태어나>(我生)가 조선 최초의 자만시에 해당한다고 임준철 교수는 파악한다.


나 태어나 사람이 된 바에야,

어찌하여 사람 도리 다하지 못했던고?

어렸을 적엔 명리 일삼았고,

나이 들어선 행동이 갈팡질팡했지”

 “나 죽은 뒤 무덤에 표시할 적에,/

‘꿈을 꾸다 죽어간 늙은이’라 써야 하리.

그렇다면 내 마음을 거의 이해하고,

천년 뒤에 이 내 회포 알아주는 이 있으리라” 로 끝나는 작품이다.


 ‘꿈을 꾸다 죽어간 늙은이’라는 표현을 두고 임 교수는 “자조적인 측면도 얼마간 있지만 현실의 가치체계로 수용되길 거부하고 방외인으로서 이단의 길을 걸어간 삶에 대한 굴절된 자기표현이기도 하다”고 해석했다.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자전적 글쓰기는 매우 폭넓게 나타나지만, 그중에서도 자만시는 매우 특수한 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7년여 동안 각종 자료를 뒤져 139명이 151개 제목으로 쓴 우리의 자만시 228편을 확인했습니다만, 개인 소장 문헌과 구한말 이후 작품들을 추가하면 300편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자기표현 수단이자 선조들의 죽음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자만시는 매우 풍부한 연구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임 교수는 “중국과 일본에도 자만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없으며, 서구에는 자만시라는 장르 개념 자체가 없는 것 아닌가 싶다”며 “그런 점에서 자만시에 대한 비교문학적 검토는 평생의 연구 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의 변화 따라 죽음으로 돌아가리니,

예순 해 삶 어찌 짧다 하리.

다만 한스럽기는 스승과 벗 잃고,

기록할 만한 선행이 없다는 것뿐.

몸 떠난 넋 흩어져 어디로 갔는가?

바람만이 무덤 앞 나무에서 울부짖겠지.

살아 있을 때 나 알아주는 이 없었나니,

날 애달파하며 곡해줄 사람 누구랴.”


17세기 중인 시인 최기남의 작품이 계급적 한계로 고통당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연민을 드러냈다면, 책의 제목을 낳은 이양연(1771~1853)의 만년작 <병이 위급해져>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려는 의식”을 간결하게 표현했다.


“시름으로 보낸 일생,

달은 암만 봐도 모자라더라.

그곳에선 영원히 서로 대할 수 있을 터이니,

묘지로 가는 이 길도 나쁘지만은 않구려.”


“죽음과 죽음을 다룬 시의 핵심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죽음의 양상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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