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시대 재구성 - 양희철

2021.01.28 14:37:42

국제적으로 COVID-19로 불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을 박탈당한지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외국에서 발생한 사소하지만 안타까운 일로만 보였고, 다른 많은 전염병들처럼 우리가 접할 수 없는 곳에서 그 발걸음이 멈추고 말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 곁에 다가온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단지 집합금지명령 때문만이 아니라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무증상 감염으로 가족끼리도 만나는 것이 불안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혹자는 현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유행 상황을 스페인 독감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영향은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염병이었던 중세시대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 일명 흑사병에 비견할 만하다. 온 세상에 흑사병의 손길이 한번 뻗치자 그 이후 인류의 삶은 수백 년 동안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었고, 그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제2차 대전을 제외하고 인류에게 가장 참혹했던 중세 흑사병의 발자취를 따라간 ‘흑사병 시대의 재구성’이란 책에서 저자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큰 경종을 울리고 있다. 몽골 고원 내지는 이시크쿨 호수 근방에서 발생해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었던 중세 흑사병은 당시 약 2억 명의 희생자를 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1/3이 사망했고, 중동 및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도 비슷한 규모가 희생되었다.


이를 현재 인류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20억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핵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에 버금가는 끔찍한 수준의 재앙이었다. 이러한 공포, 비탄 및 아우성이 가득한 시대에는 인간의 이성이 마비되고 즉흥적인 감정이 앞서기는 경향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희생양 찾기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퍼져 떼죽음이 일어나자 세계 지배를 꿈꾸는 유대인들이 기독교도 지구의 우물에 독약을 탔다는, 우리에게도 어딘가 익숙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이후 유럽 전역은 유대인들에게 흑사병의 책임을 묻고, 고리대금업을 하던 유대인들에게 진 채무도 면제받으려는 군중들의 봉기가 일어나 유대인 대학살의 광기가 휩쓸기 시작했다. 물론 유대인들은 당시 흑사병의 전파와 별 관련이 없었으니 이렇게 유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더라도 흑사병이란 죽음의 사자를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결국 유럽 전체는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부모는 아픈 자식을 버리고, 자식은 죽어가는 부모를 외면하였으며 침상에서 가족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무기력한 체념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책의 저자가 지적했듯이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모두가 서로의 적이 되고 고립되어 외롭고 작은 섬이 되어 갔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했었다. 특히 잉글랜드에서는 전체 인구의 1/3 내지 절반 가까이 흑사병으로 희생되어 어제 인사했던 이웃이 오늘 수레에 실려 공동묘지로 가고 있었는데도 공동체의 지도자들과 주민들은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잉글랜드에서는 큰 피해에도 불구하고 사회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다.

중세 흑사병과 관련해서는 흑사병이 맹위를 떨치던 기간의 참상뿐만 아니라 흑사병으로 인해 변화된 사회·경제적 구조 변화에도 놀라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자 노동력이 부족해 임금이 상승하고 봉건적 예속이 풀렸으며,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할 기술 개발이 촉진되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개발도 노동집약적이었던 필사에 의존한 서적 출판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흑사병이 인류에게 반드시 해악만 끼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흑사병은 문화나 심리적으로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고대나 중세 초기의 죽음은 공공의 행사였지만 중세 후기 들어서는 근대에서 보편화된 개념인 개인의 죽음이나 ‘나’의 죽음으로 변화되었는데 흑사병으로 인한 공동체와의 단절이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도 보인다. 현재 코로나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들의 가족들이 예전처럼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떠올리면 코로나가 진정되더라도 한번 바뀐 삶의 양식이 전과 같이 돌아오지는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과거 몽골 제국의 확장과 함께 활발해진 인간의 활동으로 오지에만 머물던 흑사병이 먼 세계로 전파된 것처럼 흑사병으로부터 살아남은 인류는 지금 다시 자신이 초래한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해 또 다른 재앙을 마주하고 있다.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흑사병으로 인해 본능만을 따르는 쾌락주의가 만연하고, 사회질서나 도덕이 무너진 당시 시대상을 그리고 있는데 코로나가 만드는 새로운 시대가 그런 모습이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자꾸 되뇌어 본다.

 

[출처] [양희철 칼럼] 코로나의 시대 재구성|작성자 나눔과나눔


 

김동원 기자 info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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