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년 전 연평도를 기억한다. 평화롭던 섬이 북한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던 날. 내 나이 또래의 젊은 군인 둘이 전사했고, 민간인 둘이 살해당했다. 섬 위로 흩어지던 뿌연 포연처럼 섬 주민들의 삶도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휴전협정 이후 북한이 우리 영토를 직접 공격하여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 나는 군에 있었고, 전쟁을 준비했다.
8년 전 정치인들을 기억한다. 주적 북한의 만행에 분노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행동을 비호하던 그 사람들을 기억한다. 보수정권이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한 탓이라며, 그래서 지금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이냐며, 정당한 분노를 짓누르며 다그치던 입들을 기억한다. 지옥이 된 연평도 위로 울려퍼지는 통곡을 애써 외면하던 그 눈길들을 기억한다. 뉴스에서 정치인들의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나올 동안, 영결식에 참석해 전우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우리 군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8년 후 그 밤을 기억한다. 연평도 포격 도발의 배후로 알려진 북한 김영철이 한국 땅을 밟겠다고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그게 평화란다. 천안함도, 연평도도, 목함지뢰도, 아무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평화를 위해 올림픽에 와야겠단다. 그가 우리 땅을 유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족들과 함께 그가 넘어온다는 통일대교 위를 지켰던 그 날 밤. 밤새 임진강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길을 지켰건만,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 몰래 군사도로로 그를 모셔왔다. 8년 전 군인으로서도, 8년 후 국민으로서도 우리 땅을 지키지 못했다.
8년 후 다시 정치인들을 보고 있다. 그렇게 당하고 또 당하는 게 평화란다. 죽인 건 저들이고, 희생당한 건 우리인데. 가해자는 아무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피해자가 나서서 이것저것 퍼주자고 한다. 평양까지 올라가서 “개념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렵게 모셔간 우리 기업인들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는 모욕을 들어도, 그저 북한 입장만 비호한다.
그들을 자극하지 말자며 군 훈련도 취소하고, 군 행사도 축소하고, 군 시설도 파괴한다. 북한의 비밀 미사일 기지 소식이나, 전민 무장화 소식이 들리는데도 우리는 우리를 지킬 방패들을 내려놓고 있다. 사라지고 있는 건 안보만이 아니다. 우리가 당한 기억마저도 지워가고 있다. 각종 자료에서는 주적이 사라지고, 북한의 도발과 이에 희생당한 순국선열들이 사라지고 있다. 정치인들은, 대통령은, 그게 평화라고 한다.
8년 전 2010년 11월 23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을 기억한다. 국민들을 죽인 북한을 기억하고, 국민들을 배신한 정치인들을 기억한다. 역사조차 지우려드는 저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은 기억하는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지키는 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기억이라도 전하려 한다. [출처 : 제3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