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분노와 변화가 안타깝다.........- 조용수

2018.11.07 14:06:28

8살 아이가 죽었다. 사망 원인은 횡격막 탈장으로 인한 저혈량성 쇼크. 환아는 2주일간 4번이나 병원을 찾았으나, 변비라고만 들었다. 간단한 처치만 하고 퇴원했다. 그런데 낫지 않았다. 복통이 계속되어 5번째로 병원을 찾았고, 거기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병명은 고작 변비가 아닌 횡격막 탈장이었고, 손 쓰기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몇시간 후 아이는 숨을 거뒀다. 법원의 판단은 사망의 직접원인을 횡격막 탈장으로 보았다. 모든 생각의 과정은 여기서부터 출발했을 게 틀림없다. 환아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탈장 치료였다. 탈장은 현대의료로 치료가 어렵지 않은 질병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질환을 진단하는게 불가능했을까? 4번의 병원 진료 과정에서 횡격막 탈장을 전혀 알아낼 수 없었을까? 여기서 탈장을 의심할만한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면, 의사들에겐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법원은 꼼꼼히 진료내역을 살폈고, 첫번째 병원 기록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낸다.

 처음 병원 내원 당시 흉부 x-ray에 흉수 소견이 있었다. 나는 자료가 없어서 모든 과정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 드러난 정보로 추정만 해 볼 따름이다. 법원은 여러 의무기록을 통해, 환아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횡격막 탈장이 느리게 진행됐고, 그 동안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하여 환아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그 과정을 되돌릴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던 걸로 판단했다. 첫 병원 검사결과에 이상 소견이 보였으니까. 그 부분을 정밀 검사를 했더라면, 탈장의 진단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랬으면 환아를 살릴 수 있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4개의 병원 중 단 1곳이라도 문제의 그 사진을 신경 썼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흉수를 의심하기 어려운 사진이었나?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러진 않은 모양이다. 의사라면 누구나 쉽게 알아 챌 정도의 흉수 소견을 보이고 있었던 듯 하다. 보통의 의사가 보통의 주의를 기울인다면, 놓치지 않았을 사진. 업무상 과실이 인정받은 연유다. 각각의 의사에게 묻고있는 책임은, 환아를 직접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아니다. 업무상 과실이 발생한 건 분명 있었던 사실인데, 그 과실이 아니었다면 환아를 살릴 수 있지 않았겠냐는 반문이다. 쉽게 말해, 과실로 인해 환아를 살릴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단 얘기다. 의사의 과실이 ‘직접’ 환자를 사망으로 이끌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 경우는, 과실이 있었고 ‘그리고’ 사망사건이 있었다고, 따로 보는 게 이해하기 쉽다. 법원은 과실과 사망 사이에 직접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과실 때문에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걸 막지 못했다는, 정황상의 인과관계를 채택한 걸로 보인다. 누군가 하나라도 표준적인 주의를 기울였다면, 환아가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법원의 판결엔 나름의 내적 integrity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지 않을 거면 애초에 x-ray 오더를 내지 마.”

전공의 때 선배들에게 귀에 박히게 들었던 충고다. 이걸로 혼난 적이 참 많았다. 바빠 죽겠는데 그 많은 x-ray를 어떻게 보냐고 반문했는데, 그때마다 눈물이 핑 돌게 야단을 들었다. 사실 욕 먹어도 쌌다. 나는 틈만 나면 영상을 놓쳤었으니까. 내가 근무하면 선배들은 평소보다 몇배는 더 긴장했었다. 내가 놓친 걸 백업해야 했으니까. 날 사람 만들려고 무던 고생들을 했다. 안 볼 거면 차라리 찍지말라는 충고를 귀에 박히게 들었다. 이 사건도 애초에 처음 본 의사가 흉부 x-ray를 찍지 않았다면, 대부분이 무죄를 선고받았을 것이다. 환아는 횡격막 탈장으로 인한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이는 내가 진료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x-ray가 없었다면,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므로 책임을 묻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검사를 안했더라면, 그래서 흉수가 기록에 없다면 무죄였을 가능성이 크다. 설령 그게 더 환자에게 해로웠을지라도 말이다. 문제는 어떤 이유로든 영상 검사를 했다는 데 있다. 검사를 진행한 이상 의사는 그것을 확인할 의무를 진다.

물어보자. 8살 소아의 x-ray에 나타난 흉수 소견과 변비로 인한 복통, 이 둘 중에 무엇이 더 신경쓰이는가? 당연히 전자다. 복통은 변비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러나 흉수는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 진단이 안되었다. 8살 아이가 이유없이 흉수가 생겼을 리 없다. 무언가 내가 놓친 커다란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 아이였다면 변비는 어찌되든지 둘째치고, 흉수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의사의 과실은 명백하다. 이 자체를 부인하면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아무도 귀 기울여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정리하자. 의사의 과실이 있었다. 환아가 사망했다. 과실이 없었다면 환아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재판부의 판결과 의사들의 분노 사이, 그 Gap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하나의 이유로, 사건을 판단하는 ‘단위’를 얘기하고 싶다.

 판결을 보면 알겠지만, 판사는 환아의 사망 과정 전체를 하나의 사건으로 바라보았다. 각각의 의사들이 진료 과정에서 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구조다. 환자가 사망하기까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의사의 과실을 따졌다. 그래서 모든 의사들의 과실은 사망과 연결된다. 의사들은 각자의 진료 단위로 사건을 나누는 데 익숙하다. 자신이 환자를 담당한 상황만을 따진다. 다른 의사들의 부분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내가 환자를 진료한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는가? 사망을 예측할 수 있었는가? 이렇게만 따진다.

첫번째 의사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면, 8세 소아의 복통에서 횡격막 탈장을 의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외상의 병력이 없다면 더더욱. 복통 환아라면 흉부사진에서 건질 단서는 복막염 뿐이다. 설령 흉수를 봤더라도 당장 해줄 건 없다.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퇴원해서 지켜보고, 증상이 나타난 후 검사해도 대부분 늦지 않는다. 이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진료 과정에 큰 과오는 없다. 비록 흉수를 놓쳤지만, 증상없는 흉수라면 굳이 놓쳤다는 표현을 쓰기도 민망하다. 자신의 진료과정과 환아의 사망 사이에서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그러니 이후의 진료과정은 다른 의사의 책임이다.

두번째 의사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찍은 사진도 아니다. 복통 환자였지 호흡곤란이 아니었다. 흉부 검사를 확인할 필요성조차 못 느꼈다. 횡격막 탈장의 증상도 안보였다. 변비로 여러번 내원하는 환자는 흔하디 흔하다. 이 의사 또한 자신의 진료과정과 사망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식이다. 그러니 자신들이 실형을 받을거라곤 상상 못했을 것 같다. 형사합의도 안하고 반성의 기미도 전혀 없었을 거 같다. 그런 태도가 실형을 선고받는 데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무도 자신들의 잘못으로 환아가 죽었다고 생각하진 않고 있을 것이다. 과실이 일부 있었지만, 죽음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한다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대다수의 의사들이 이번 판결에 불안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 있다. 모든 의사들이 진료실 단위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을 떠난 환자까지 책임져야 한다니…
불확실한 의료는 필연적으로 과실을 동반하는데, 이는 대부분 진료과정에서 바로잡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미세한 틈과 틈을 뚫고 그 사이로 새어나간 환아가 생겼고, 그 아이가 죽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진료를 담당한 모든 의사에게 지웠다.

각자가 자기 진료실에서 진료의 ‘완전성’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내 다음 의사에게 내 운명을 맡길 수는 없으니까. 불안한 환자는 다른 병원에 토스하고, 어지간한 병에도 검사를 전부 시행한다. 실형 소식이 전해진 바로 그날, 이런 움직임들은 즉시 시작되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다. 여러모로 안타깝다. [출처 : 제3의길]
기자 info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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